본문 바로가기
하는일(교육업)

고려시대 불교문화와 팔만대장경

by 레오마니 2025. 6. 15.

<전쟁 속에서도 꽃피운 신앙, 그리고 지켜낸 위대한 기록>

고려는 불교의 나라였다.
"불법(佛法)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이념과 정치, 예술, 군사, 생활 전반에 깊이 스며든 시대.
그 중심에는 왕실의 후원 아래 발전한 불교문화와,
몽골의 침략이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지켜낸 인류 최대의 목판 인쇄물, 팔만대장경이 있다.

 

본 글에서는 고려 불교문화의 특징, 전쟁 속 문화 보존 노력,
그리고 팔만대장경 조판 과정과 그 의미를 통해
‘왜 그들은 생명을 걸고까지 이 목판을 지켜냈는가’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고려시대 불교문화와 팔만대장경
고려시대 불교문화와 팔만대장경

 

1. 고려의 국교, 불교가 나라의 뿌리였다.

고려는 불교를 국교로 삼은 나라였다.
태조 왕건은 후삼국 통일 후 "호국불교"를 국가 통치 이념으로 삼았고,
불교는 단순한 종교를 넘어 왕권 강화와 민심 통합, 문화의 꽃으로 기능했다.

▶ 불교는 정치였다

왕실은 불교를 적극 후원했다. 왕이 직접 대장경을 외우고 시주를 베풀며,
사찰 건립, 승려 제도 정비, 승과(僧科: 승려 시험) 운영 등을 통해 체계적인 불교 행정 시스템을 확립했다.

고려의 대표적인 사찰인 개성의 봉은사, 해인사의 중창,
그리고 왕실과 귀족들이 기증한 불상·탑·경전 등은 신앙을 통한 권위의 상징이었다.

불교는 백성에게는 안식을 주고, 왕실에게는 정통성과 정당성을 부여하는 통치 도구가 되었다.

 

2. 예술과 신앙의 결정체, 고려 불교문화의 특징

고려 불교문화는 찬란했다.
특히 공예, 회화, 건축, 문학 분야에서 그 진가를 발휘했다.

▶ 고려불화

고려의 불화는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금니(金泥, 금가루)와 섬세한 선, 자비로운 표정의 불상 표현은
신앙적 감동과 미적 세련미를 동시에 지닌다.
오늘날 일본과 미국 박물관에 소장된 수많은 고려불화는
그 가치가 수십억 원에 이를 정도다.

▶ 금속공예와 불상

은입사, 동제불상, 철불, 금동불상 등 다양한 불상과 공예품은
고려인의 정교한 장인정신과 공예기술을 보여준다.
특히 철조비로자나불(경북 안동)은 압도적인 스케일과 무게로
국내 최대 철불로 알려져 있다.

▶ 사찰 건축

고려 중기부터는 불교 사찰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사찰은 단순한 종교공간이 아닌 문화·교육·복지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대표적인 사찰로는 해인사, 화엄사, 송광사, 선암사 등이 있으며,
이들 사찰은 각 지역의 중심 문화권으로 성장했다.

 

불교는 고려 사회에서 삶의 리듬을 정하고, 죽음 이후의 세계를 준비하게 하는 철학이었다.
그러나, 그 믿음은 곧 극한의 상황에서도 문화유산을 지켜내는 원동력이 된다.

 

3. 몽골이 침입, 불타버린 대장경과 다시 쓰기 시작한 목판

1231년, 몽골의 1차 침입이 시작되며 고려는 위기에 빠진다.
수십만의 기병과 함께 초토화 작전을 감행한 몽골은 사찰을 불태우고,
수많은 문화재를 약탈하거나 파괴한다.

특히 강화도로 천도한 고려 조정은 절망 속에서도 영적 힘을 회복시키기 위한 결단을 내린다.
그것이 바로 팔만대장경의 재조판(다시 새기기)이었다.

"몽골의 침입은 무력으로 막을 수 없지만, 부처의 힘을 빌려 민심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

▶ 1차 대장경 소실

고려는 이미 11세기, 초조대장경을 완성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경판은 몽골군에 의해 불타버렸고, 문화적 자존심마저 짓밟힌 상황이었다.

그 상실을 되찾고자 고려 조정과 승려들은 다시 모인다.
그리고 당시 총지휘를 맡은 인물은 수기(守其) 스님과 승려 원진, 혜심, 수기 등,
불심과 애국심을 지닌 지식인들이었다.

 

4. 팔만대장경, 전쟁과 불심으로 지켜낸 세계 유산

팔만대장경은 약 8만 1천여 장의 목판에 새겨진 불교 경전이다.
총 1,514종, 6,791권. 전 세계 어떤 종교 문헌보다 방대한 분량과 체계적인 편집을 자랑한다.

▶ 조판 작업의 과정

1236년부터 1251년까지 16년에 걸쳐 작업이 진행되었고,

수천 명의 승려, 목수, 각수(글씨 새기는 사람)가 참여했다.

나무는 해남, 진도 등에서 자란 곧고 단단한 소나무를 사용했고,

바닷물에 담가 해충을 없앤 후, 수십 번 말리고 다듬는 과정을 반복했다.

▶ 기술적 정교함

-좌우 정렬, 글자 간격, 편집 체계가 지금 봐도 놀라울 만큼 정확하다.

-오탈자가 거의 없고, 같은 글자의 크기와 획수가 균일하다.

-모든 경판은 손으로 새겼지만,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명작이다.

-이는 단순한 인쇄술의 문제를 넘어, 정신력과 협업의 극치였다.

▶ 해인사로 간 대장경

조판된 대장경은 해인사 장경판전에 보관되었고,
오늘날까지도 화재·습기·해충으로부터 완벽히 보존되고 있는 세계 유일의 문화재다.

이는 건축학적 과학성과 자연 환경, 그리고 지속적인 보존 노력의 결과다.

 

5. 전쟁 중에도 문화를 지킨 고려인의 의지

팔만대장경은 단순한 불교 경전이 아니다.
그것은 고려인의 자존심이며, 정신의 성벽이었다.

 

누군가는 말한다. “나라가 무너지는데 글자를 새긴다고 무엇이 달라지느냐”고.
하지만 고려인은 오히려 물었다. “나라가 흔들릴수록, 남겨야 할 것이 있다”고.

그들은 전쟁 속에서도 펜 대신 조각칼을 들었고,
검 대신 경판을 날랐다.

 

목숨보다 경전을 우선하며 만든 이 문화재는
오늘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세계가 인정한 ‘지속 가능성과 영적 자산’이 되었다.


문화는 기억이다
고려는 전쟁과 파괴 속에서도
기억할 가치가 있는 것을 남기기 위해 팔만대장경을 새겼다.
그들은 물질을 잃었지만, 정신은 지켰고,
나라가 기울어도 문화와 기록은 다시 나라를 일으킬 힘이 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지금 우리가 해인사에서 마주하는 경판 한 장, 한 글자에는
그 시대 수많은 사람들의 절박함과 의지, 그리고
불교를 넘어 민족 전체의 염원이 담겨 있다.

문화유산은 그저 옛것이 아니다.
그것은 절망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 마음,
그리고 후세에게 남기고 싶었던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