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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운동: 조선의 마지막 민란에서 근대의 문을 두드리다 1. 동학의 등장과 농민의 분노, 배경을 보다19세기 후반 조선은 외세의 압력과 내부 부패가 동시에 격화되던 시기였다.서양 열강의 본격적인 동아시아 진출, 청과 일본의 세력 다툼, 그리고 국내적으로는 부정부패, 탐관오리, 삼정(전정·군정·환곡)의 문란이 극에 달해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람이 곧 하늘이다(人乃天)”라는 사상을 바탕으로 민중의 희망이 된 것이 바로 ‘동학(東學)’이었다. 동학은 1860년 최제우가 창시한 종교이자 사상 운동으로, 유·불·선과 민간신앙을 포용한 새 종교였다. 그는 신분을 가리지 않고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을 강조하였고, 당시 억압받던 농민과 하층민 사이에서 급속히 퍼져나갔다. 특히 1890년대 들어 2대 교주인 최시형의 활동과 접신 체험을 통해 조직적 .. 2025. 7. 1.
왕건의 고려 건국과 후삼국 통일― 호족 연합, 태조의 정책, 결혼 외교를 중심으로 서론: 후삼국 시대와 새로운 통일의 필요성신라 말기, 중앙정부의 통제력은 점차 약화되고 지방에서 세력을 키운 호족들이 각지에서 독자적인 정치 세력을 형성하면서 신라는 사실상 전국적인 통합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 틈을 타 892년 궁예가 후고구려를 세우고, 900년에는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하면서 한반도는 신라·후고구려·후백제가 대립하는 후삼국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 시기는 혼란과 분열의 시대였지만 동시에 새로운 통일을 위한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시기이기도 했다. 후삼국의 주도권은 군사력뿐 아니라 정치적 정당성, 민심 확보, 외교적 유연성에 따라 달라졌고, 이 가운데 가장 유리한 위치에 선 인물이 바로 왕건이었다. 왕건은 후고구려의 장수로 출발하여 고려를 세우고, 지혜로운 정치와 유연한 외교, 강력한 .. 2025. 6. 30.
최무선과 화약무기, 왜구 격퇴 – 기술 발전과 군사력의 변화 서론: 고려 후기의 위기와 과학 기술의 중요성고려 후기, 나라는 외적으로 큰 위기에 직면했다. 13세기 몽골의 침략과 그 이후의 원 간섭기를 거치며 국가의 자주권은 크게 약화되었고, 내적으로는 문벌귀족의 부패와 민생의 피폐로 인해 백성들의 삶은 극도로 어려워졌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가장 두드러진 문제 중 하나는 바로 ‘왜구’의 끊임없는 침략이었다. 14세기 중반 이후부터 더욱 심각해진 왜구의 약탈은 고려의 해안 지역을 초토화시키며 국가 안보를 크게 위협하였다.이러한 상황에서 주목받은 인물이 바로 과학자이자 무기 개발자였던 최무선이다. 그는 새로운 기술, 즉 ‘화약’이라는 전혀 다른 개념의 무기를 도입함으로써 기존의 군사 체계를 혁신하고, 왜구에 맞선 효과적인 대응 체제를 마련하였다. 최무선의 등장은 단.. 2025. 6. 29.
고려의 과거제와 관리 제도, 새로운 사대부와 공부하는 분위기 서론: 고려 시대의 정치와 과거제란?고려는 918년에 왕건이라는 사람이 세운 나라예요. 고려는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해 여러 제도를 만들었는데, 그중에서도 '과거제'라는 시험 제도가 아주 중요했어요. 이시험은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들을 뽑아서 나라의 일을 맡기기 위해 만든 것이죠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제도도 문제점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특히, 집안이 좋은 귀족들이 대부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평범한 사람들은 시험을 봐도 높은 자리에 오르기 어려웠어요. 그러다 나중에는 새로운 계층인 '신진 사대부'가 등장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나라를 바로 세우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답니다. 이 글에서는 고려의 과거제가 어떻게 생겨났고, 누가 이 제도를 이용해 출세했는지, 그리고 어떤 새로운 사람들이 나타났는지를 .. 2025. 6. 28.
무신정권과 망이·망소이의 난 - 무신의 시대, 억눌린 백성의 저항 서론고려 중기, 문벌귀족 중심의 정치 체제는 점차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과거제와 음서제를 통해 형성된 문신 중심의 권력 구조는 소수 가문에게 관직과 토지를 독점적으로 분배했고, 그 결과 정치와 사회는 극단적인 불균형 상태에 빠졌다. 무신들은 군사적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정치적 발언권을 박탈당한 채 철저히 주변부로 밀려나 있었고, 지방 백성들은 토지 수탈과 과중한 세금, 불공정한 부역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이러한 누적된 갈등은 1170년, 무신정변이라는 형태로 폭발하였다. 김보당, 정중부, 이의방 등의 무신들은 의종을 폐위시키고 정치 권력을 장악하며 고려의 정치를 군사 중심 체제로 전환시켰다. 하지만 무신정권은 내부의 분열과 권력 투쟁, 통치 능력의 한계를 노출했고, 특히 민중의 삶은 더욱 .. 2025. 6. 27.
광개토대왕과 고구려의 전성기 정복왕의 꿈, 고구려의 힘을 펼치다 고구려의 지정학적 조건과 성장 기반고구려는 기원전 37년, 고주몽(동명성왕)에 의해 졸본에서 건국된 이후 점차 국가 체제를 정비해 나가며 동북아시아의 강국으로 성장했다. 초기에는 압록강 유역을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국내성(지금의 중국 지안)으로 천도하면서 본격적인 왕권 강화를 시작했다. 삼국 중 가장 먼저 중앙집권 체제를 확립한 고구려는, 강력한 군사력과 영토 확장을 통해 발전 기반을 다져왔다.고구려가 성장할 수 있었던 지정학적 조건은 천혜의 방어 환경이었다. 산악 지형과 압록강, 두만강 등은 외세의 침입을 방어하는 데 유리했으며, 이 지역은 농업뿐 아니라 수렵, 철광 자원이 풍부해 경제적으로도 자립할 수 있었다. 또한 고구려는 중국 북방의 유목 민족들과의 전투를 통해.. 2025. 6. 26.